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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짤방 내용이 본의 아니게 좀 야하다.
 모 까페의 유머 게시판에 올라온 것인데 나는 이것을 보면서 유쾌한 웃음 대신 공허한 실소를 터뜨릴 수 밖에 없었다. 단순히 유머라고 보기엔 우리나라 영어 교육 현실에 제대로 주먹 한방 날린 기분이다. 허허.
 기본적으로 이런 내용이 잘리지 않고 공중파에 그대로 탔다는 게 더 신기한 일이다. 얼마 전 루저 파문도 그렇고 미수다 방송 관계자들은 논란의 대상이 되는 걸 스스로 즐기는 듯도 하다. 흠.

 근데,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과연 우리나라에서 "남친이랑 놀았어요."라고 하는 문장에 play를 사용하지 않을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될까? 그 와중에 play라도 재깍 생각해 낼 수 있다면 대견한거다. 물론 그 말을 듣는 상대방은 무지 놀라고 쓱스러울테지만. ㅋ

 사족으로 잠깐 얘기를 하자면, 영어에서 '놀았다'는 말에 play를 쓰는 건 어린애들 선에선 통용되지만 어른이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친구들과 놀았다는 표현엔 주로 hang out 이란 표현을 쓰고(이건 반대로 어린애들은 쓰지 않는 표현), 애인과 만났다(놀았다)는 의미를 주려면 (have a) date with를 써야 한다.
 하지만 나는 확신한다. 우리나라에서 9년 동안 공교육으로 영어를 배운 대다수 국민들이 이 세가지 표현 중에 그나마 익힐 수 있는 건 play 뿐이라고.

 대학 시절 영어통번역과에 입학해서 외국인 교수님과 첫 대면했던 수업 시간이 생각난다. (아마도 speech 시간이었던 것 같다.) 교수님이 How are you today? 하고 물으셨는데 거짓말 안하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학생들이 "I'm fine. (thank you, and you?)" 라고 대답했다. 괄호 안에 문장까지 말한 사람도 있고 파인에서 끝낸 사람도 있고. ㅋ 그러자 교수님이 폭소를 하면서 "Is everybody 'fine'? really, huh?"라고 되물으셨는데 사실 그 질문은 어떤 의미에선 충격적이었다. 왜냐면 그 질문을 하기 전까진 학생들이 도대체 대답의 어디가 잘못된 건지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중고등학교 영어 교과서에서 달달 외웠던 '인삿말의 정석'은 사실 정답이 아니었다. 정답일 수도 없고 더 황당했던 건 실제로는 그닥 쓰이지도 않는 표현이었다! 그 시간 이후, 교수님은 I'm fine을 절대 사용할 수 없다는 파인금지령을 내리셨고 이후에 알고 보니 우리 이전부터 매년 반복되어 왔던 일이었다. -_-; 영어 교육도 주입식으로 하는 대한민국. ㅋ  

 우리 아이들이 어리다보니, 역시나 비슷한 또래 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내 주변 엄마들의 현재 최대 관심사는 아이를 영어유치원(줄여서 영유)에 보내느냐 마느냐다. 우리 동네는 아무래도 지역 특성상-_- 대부분 영유를 보내는 분위기이고, 때로는 영유를 안 보내면 계모 취급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다. 내년에 우리 윤섭이 윤하도 유치원에 보내게 되었는데(지금까지는 어린이집이나 놀이학교에 다녔다.) 나는 단 한번의 갈등도 없이 일반유치원을 택했다. 아니, 아버님이 윤섭이 영어유치원 보내야하지 않냐고 하시는 거 내가 반대했다. 나는 계모가 되겠지. 아마 난 안될거야. 

 영어유치원은 그렇게 불리기 때문에 마치 일반유치원과 같은 위치에 존재하는 대등한 기관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영어 학원이다. 유치원으로 인가를 받기 위해선 반드시 단독 건물이어야 하고,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교사 자격증이 있는 사람들만 교사로 채용할 수 있으며 이들은 초중고등학교 선생님들과 마찬가지로 공무원 대우를 받고 그에 준하게 관리된다. 어린이집과도 달라서 유치원은 교육부에서 관리하고 있다. (어린이집은 여성부) 법령이 인정하는 취학 전 유일의 교육기관인 셈이다.
 아이가 취학 전에 배워야 하는, 혹은 배움을 적어도 시작해야 하는 무수히 많은 것들이 존재하고 그 중 하나가 영어가 되었다는 오늘날의 현실을 무시하자는 건 아니다. 하지만 영어가 유치원의 정규 교육을 포기하면서까지 얻어야 할 만큼 중대한 비중을 차지한다는 건 인정할 수가 없다. 적어도 이렇게 중요하고도 짧은 유아기때 말이다.

 근데 여기 더 웃긴 사실이 있다.
 영어유치원을 졸업하고 평범한 공립학교에 들어간 요즘의 아이들은 어떨까? 학교에서 영어 시간에 잘 따라간다고 좋아할까? 부모는 그에 만족할까?
 정답은 '아니다.'

 공립학교에 들어가게 되면 첫번째 받는 충격은 '공립학교의 영어 수준'이다. 서울소재 4년제 사립대 등록금보다도 더 많은 비용을 매년 들여서 1~3년 아이 영어 가르쳐 놨더니 정작 학교 가니까 수업 내용이 바닥에서 긴다. 수준이 안 맞아! 왠지 돈 들인 게 억울하다. 혹은 이런 수준으로 만족하고 애를 냅둔다는 게 불안해진다. 결국 대안을 찾게 된다. 사설 영어 학원에서 더욱 만족할만한 수준의 영어를 배우게 한다. 돈은 끊임없이 지출된다.

 두번째로 받는 충격은 '시간이 지날수록 좁아지는 학생 간 영어 수준의 갭 현상'이다.
 외국어를 배우는 데 '적기'라는 게 있다면, 대체적인 연구 결과나 통계에 따르면 8~10살 내외부터라고 한다. (물론 견해 차이는 존재한다.) 내 주변 엄마들의 오랜 경험이나 나의 경험을 미뤄봤을 때에 나는 이게 대략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흔히들 엄마들이 5세때 애들을 영유에 보내고 나서 몇달 지나고 apple이나 orange등의 영어 단어들을 구사하는 걸 보면서 희열을 느끼며 돈 주고 보내길 잘 했다고 하지만, 보통 아이들이 5~7세에 배운 걸 10살 때 배우게 하면 좀 오버해서 3년 걸릴 거 3달 만에 학습할 수가 있다. 결국 아주 특별나게 꾸준히 관리해주지 않으면 어느 순간엔 아이들 노력여하에 따라 거기서 거기가 된다. 학교 성적으로 따지면 더욱 그렇다. 결국 점수는 100점이 상한선이고, 문제가 토플 수준으로 어려운 것도 아니고, 더 멀리 수능으로 따져보면 결국 전국 평균선에 맞춰져 있을 뿐이고.        

 그래서 이런 경험들이 쌓이고 쌓여서, 현재 영유 3년을 물거품 만들지 않겠어!!라고 생각하는 엄마들은 대부분 사립초등학교를 보내는 추세다. 하지만 사립초등학교 이후에 국제중, 사립고를 나올 거 아니라면 여기서 또 한번의 갈등이 시작되는거다. 중학교 버전으로. ㄱ-

 만약 공교육이 튼실했더라면, 죽은 영어, 문법이 전부인 영어가 아니라 듣기 말하기 쓰기가 골고루 확립된 영어를 학교에서 가르쳤더라면, 그렇게 9년 배우면 세계 어디를 나가서도 당당하게 유창한 영어를 써야 맞는건데. 아직도 어디가서 "영어 9년 배웠어요."라고 하기엔 하릴없이 쪽팔리기만 한 게 우리나라 공교육 영어의 현실이다.
 
 결국 앞서 말한 영유도 영어를 오버액션하여 강조하는 우리나라(도대체 왜 '모든' 회사의 채용과 갖가지 시험에서 영어 점수를 요구하는거냐고. 가슴에 손을 얹고 진짜 필요해?) 사회와 허약한 공교육 영어가 짬뽕되어 만들어 낸 비극의 한 형태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그 어린 나이에 모국어가 한국어인 이 나라 이 땅에서 한국어 한마디라도 쓰면 혼내는 영유에 적응하고 다니느라 고생하고. 부모는 부모대로 어마어마한 돈 벌어서 갖다 내느라 고생하고. (우리 동네 영유는 보통 한달 원비가 120~180만원 선이다.)

 근데 우리 어른들은 사실 알고 있다.
 세상에 영어 제대로 못 배우면 패배자인 것처럼 알고 크지만, 막상 어른 되서 취직해보면 영어 개뿔 쓸라고 해도 쓸데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란 거. (울 자갸는 카츄사에서 유창하게 했던 영어 취직해서 오히려 많이 잊어버렸다더라.) 이 글로벌 시대에도, 영어가 꼭 밥 먹여주는 건 아니라는 거. 커서 본인이 정 필요하다 싶으면 그때 돈 들여서 제대로 배워도 그닥 늦지 않다는 거.

 사실 유학 갈 거 아니고 예체능 특기자라서 외국 다니며 영어 필요한 거 아니라면 학생 시절 영어 올인의 종착점은 수능이잖아? (톡 까놓고 말해보자규.) 수능 영어 때문에 5살 때부터 이 고생하는 거라면 정말 안습. 그게 아니라면 사실 그렇게까지 죽기 살기로 목 멜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적어도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교육까지 다 포기하면서는 좀 아니지 않나 싶다.

 영어를 학습이 아닌 언어로서 거부감없이 받아들이게 해주는 게 어릴 때 해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부모의 할일이라는 게 나의 개인적인 생각.
 영어로 된 동화책 읽어주고, 라임이나 노래 많이 들려주고, 페파피그나 까이유, 디즈니 시리즈 같은 영어로 된 애들 프로그램 가끔 보여주고, 궁금한 거 물어보면 대답해주고. 블라블라.
 
 하긴, 생각해보면 주변을 봐도 2~3개씩 기본으로 시키던데, 어린이집 제외하면 사교육 하나도 안 시키는 내가 이상한 거다. ㄱ- (별종소리 자주 듣는다. 알고보니 계모? ㅋ)
 사실 필요하면 사교육도 할 수 있고 예체능은 특히 재능 있으면 일찍 시킬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쿨한 엄마인데 말이지. 내년엔 우리 윤하 발레 시킬거다. 윤섭이는 피아노? ㅋㅋ

아무튼 영어지상주의인 이 나라에서 공교육 9년 영어 배우고 나온 국민들의 영어 실력이란 게 완전 형편없다는 진실에 다시 한번 쓴웃음만. 지금 세대 아이들은 커서 또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2009/11/17 18:21 2009/11/17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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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둥이오빠 2009/11/18 19:57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이런 얘기 나올 때 마다 하는 얘기지만, 군대 2년 2개월을 카츄샤로 복무하면서 단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영어가 "How are you?" 와 "How do you do?" 였지요. ㅋㅋ 죽은 영어는 가르치면서 주식 투자 하는 법은 가르치지 않는 공교육에 대해 할 말 많지만... 언젠가 포스팅 할 기회가 있을라나 모르겠네요.

    그런데 태그 대박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덧붙여 콘솔 RPG 게임 열심히 하면 리스닝도 늘어요~

  2. black 2009/11/21 12:00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태그 공감인데?! ㅎㅎ

    조금 딴소리지만,
    How are you? 와 I'm fine. Thank you, and you? 는..
    백화점에서 쓰이더라 -_-...........토씨하나 안빼놓고 똑같이;!
    일종의 '예의상' 회화인듯. 사교 회화 -_-;;?
    조금 충격이었어 -_-.. 나도 안쓰이는 영어인줄 알고 어떻게 대답해야하나 우물댔었는데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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